[5.18] 24일 오인전투와 민간인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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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 끼리 오인하여 전투

민간인 무차별 학살
















계엄군 간 상호 오인 전투








새벽부터 광주비행장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하달받은 제11공수여단은 20사단에게 원래 주둔지인 주남마을을 인계한 후 이동하고 있었다















11공수여단의 차량 행렬은 그 길을 지나가는 도중에 대체 무슨 정신나간 생각을 한 것인지, 아무렇게나 묻지마로 눈에 보이는 곳 아무곳이나 총알을 마구 갈겨댔다.

이 때문에 진월동 원제저수지에서 물놀이를 하던 중학생 방광범(13)과 효덕국민학교 부근에서 놀던 초등학생 전재수(10)가 총에 맞아 숨졌다















13시 55분경에는 선두에 서서 이동하던 제11공수여단 63대대 병력을 보병학교 교도대가 시민군으로 오해하여 사격을 감행하며 일대 전투가 일어났다.

교도대는 무반동총과 수류탄까지 쏴가면서 공격했고, 11공수여단도 반격에 들어가 30분간 교전이 치뤄졌다.

전투는 11공수여단이 교도대가 있던 산의 매복지를 점령하며 끝났다. 이 일로 군인 10명이 사망했다














오인사격으로 군인들이 희생되자 분노한 계엄군은
그 보복으로 인근 마을의 주민들을 학살했다.















군인들은 송암동 남선연탄 공장 근처의 한 민가로 들어가 그 집에서만 3명의 청년을 총살했다.

이 일로 김승후(19), 권근립(25), 임병철(24)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또 총소리에 놀라 하수구에 숨어서 상황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박연옥(51)도 계엄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나오라는 말에도 공포에 질려 나오지 못하는 것을 계엄군이 무작정 하수구 안으로 총을 갈겼기 때문이었다.
















오전 9시 55분에는 호남고속도로에서 31사단 96연대 3대대 병력 31명에게 전교사 기갑학교 병력 120명이 공격을 가했다.

송암동에서처럼 똑같이 31사단 군인들을 시민군으로 오인했던 것이다.

이 일로 31사단 소속 군인 3명이 죽었고, 민간인 2명과 군인 10명이 부상을 입었다








1980년 5월 24일 11공수여단과 전투교육사령부가 오인교전을 벌였을 당시 위치와 직후 특전사 K가 학살을 목격한 곳으로 지목한 곳











공수부대 총탄에 구멍이 난 옷을 들고 있는 송암동 마을 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