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줬으면 그만이지] 🌈🌈🌈

선생님은 열아홉에
한약업사 자격을 얻어
1963년 고향 사천에서
한약방을 개업했고
10년 뒤 진주로 이전해
남성당 한약방을
50년간 운영했습니다.
한약방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마이크로 순서를 호명할
정도였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점심시간에는
빵을 나눠주기도 했고
전국 한약방 가운데 세금을
가장 많이 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20대 젊은 시절 부터
가난한 학생들에게
남몰래 장학금을
주기 시작하여 1,000명을
웃도는 학생들이
혜택을 보았고 40대에
100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세운
사학 명신고등학교를
나라에 헌납하고
30억 원이 넘는 재산을
국립경상대학교에
기부했고 진주의 사회, 문화,
역사, 예술, 여성, 노동,
인권단체들을 지원했습니다.
선생님은
명신고등학교를 설립 뒤
이사장실을 없애고
양호실로 쓰도록 했고
학교에 갈 때는 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이사장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안으로 들어 오는 모습은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선생님이 명신고등학교
이사장 퇴임식 때 하신
말씀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일지
모르겠습니다 마는 저는 가난
때문에 하고 싶었던 학업을
계속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한약업에 어린 나이부터
종사하게 되어 작으나마
이 직업에서는 다소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교를 설립하고자하는
욕심을 감히 내게 되었던것은
오직 두 가지 이유
즉,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 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었기에 그것을
내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는 가장 좋은 일이
곧 장학 사업이 되었던 것이고
또 학교의 설립이었습니다.
김장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