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잠시동안의 해방광주

   JYP⚡    518 읽음








계엄군의 전략적 후퇴로 인한

광주고립과

해방광주기간

















무정부상태를 방치하여

혼란상황을 유도하려 한 계엄군




그러나

광주시민들은 성숙하게 대처했다

















해방광주









공수부대가 전원 철수한 다음 날인 22일, 거리는 들뜬 시민들로 붐볐다. 시민들은 계엄군을 몰아내고 광주를 되찾았다는 승리의 쾌감으로 흥분하여 거리로 나왔다. 18일부터 나흘 간 이어졌던 유혈사태가 끝나고 평온이 찾아온 금남로는 간간이 들려오는 총성을 제외하고는 조용했다
















먼저 시민들은 18일부터 21일까지 이어진 치열한 충돌로 인해 어지러워진 거리를 자발적으로 청소했다. 22일 아침만 하더라도 부서지고 불에 탄 차량들과 바리케이드 잔해, 핏자국 등으로 거리가 얼룩져 있었는데, 시민들은 청소도구를 가지고 나와 쓸고 닦았다. 크레인을 가지고 와 전소된 차량들을 끌어냈고, 쓰레기들을 처리했다
















공권력의 부재 상태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시민자치공동체로서 나름대로의 인간애와 질서를 실천하며 서로를 도왔다
















그렇게 거리가 깨끗해지자 시장 주변에서는 아낙네들이 길가에 솥을 걸고 밥을 지었다. 그렇게 지은 밥은 거리를 돌아다니던 시민군들에게 무료로 제공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점과 상가들이 조금씩 문을 열고 손님을 맞았다.


















시민들은 부족한 혈액을 보충하기 위해 헌혈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당시 병원은 18일부터 이어진 계엄군의 폭력진압으로 인해 실려온 부상자들로 넘쳐났다. 병원은 이들을 치료하고 입원시킬 공간과 여력이 없어 애를 먹고 있었는데, 특히 부상자들이 피를 많이 흘려 혈액이 매우 부족했다.















이 소식이 들려오자 전남대학교병원, 광주기독병원, 적십자병원 등 광주 각지의 병원에 시민들이 모여들어 헌혈에 참여하였다.















시민군이 치안을 대신하니 비록 광주가 공권력이 부재하고 수천 정의 총기가 풀린 상황임에도 안전한 상태였다. 광주 시내의 은행이나 금은방, 보석점 등이 한 군데도 털린 곳이 없었으며, 강력사건도 경찰이 존재했을 때와 비교하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광주에서 일어난 시위와 여기에 참여한 광주시민들과 시민군들이 폭도가 아니라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였다. 시민들도 궐기대회에서 이 점을 언급하며 자랑스러워 할 정도였다.









거리로 솥을 들고 나와 밥을 하는 여성들








상무관에 안치되어 있는 시신들









병원에서 헌혈하는 시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