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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 인문학] 내 동생의 이름을 위하여 - 자객 섭정과 그의 누나 섭영

한 인간의 이름은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가. 목숨과도 바꿀 수 있을 만큼 무거운가, 아니면 시대의 풍파 속에 먼지처럼 흩어질 만큼 가벼운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사마천은 『사기』의 한구석에 피로 쓴 가장 처절한 비극을 새겨 넣었다. 그것은 칼을 든 자객의 이야기가 아니라, 얼굴이 지워진 시신 앞에서 터져 나온 한 누이의 절규에 관한 기록이다. 자객 섭정(聶政)과 그의 누나 섭영(聶榮)의 이야기다.

1. 저잣거리의 칼, 재상의 심장을 꿰뚫다

모든 비극은 깊은 원한에서 시작된다. 한(韓)나라의 엄중자(嚴仲子)는 재상 협루(俠累)와의 정쟁에서 밀려나 목숨의 위협을 받자, 복수를 위해 천하를 떠돌았다. 마침내 그가 제나라의 한 저잣거리에서 발견한 인물은 섭정. 노모를 모시고 개를 잡는 백정 노릇으로 생계를 잇는 평범한 사내였지만, 그의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기개가 서려 있었다. 엄중자는 섭정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보고, 황금 백 일(鎰)을 노모의 축수금으로 바치며 극진한 예로써 그를 대했다. 자신을 알아주는 '지기(知己)'의 출현이었으나, 섭정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신 동안에는, 감히 다른 이를 위해 제 한 몸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의 의리는 효(孝)라는 더 큰 무게 앞에 잠시 접혀 있었다.

시간이 흘러 노모가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나자, 섭정은 비로소 자신을 묶고 있던 굴레에서 벗어났다. 그는 길고 엄숙한 상(喪)을 마친 뒤, 스스로 엄중자를 찾아가 읊조렸다. "아아, 저 같은 시골 저잣거리의 보잘것없는 자를 이토록 알아주시니, 이제야말로 그 은혜에 보답할 때입니다." 자신을 알아준 단 한 사람을 위해, 그는 기꺼이 칼을 들기로 맹세했다.

결전의 날, 섭정은 홀로 칼 한 자루에 의지해 삼엄한 경비를 뚫고 한나라 재상의 관청으로 돌진했다. 수많은 호위 무사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지만, 신들린 듯한 그의 기세와 검술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갔다. 비명과 절규가 뒤섞인 아비규환 속에서 섭정은 마침내 섬돌 위에 있던 재상 협루를 단칼에 꿰뚫어 죽였다. 임무는 완수되었다. 그러나 그의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이 모든 일의 배후가 드러나지 않고, 오직 자신 한 사람에게서 끝나야 함을 알았다. 자신의 신원이 밝혀지면, 아직 살아있는 누나에게 끔찍한 화가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칼로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겨내고, 두 눈을 도려냈으며,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는 참혹한 방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이유는 단 두 가지, 자신을 의뢰한 엄중자를 보호하고, 동시에 가족에게 닥칠 연좌의 비극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 끔찍하게 훼손된 시신 앞에서 한나라는 경악했고, 저잣거리에 시신을 내걸고 신원을 아는 자에게 천 금을 주겠다고 방을 붙였다.

이 소식을 들은 섭정의 누나, 섭영은 비통하게 탄식했다. "필시 내 동생이 틀림없다! 내가 어찌 죽음이 두려워 현명했던 동생의 이름을 헛되이 묻히게 하겠는가!" 그녀는 곧장 한나라의 저잣거리로 달려갔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 앞에 이르자 그녀는 통곡하며 그 위에 엎드렸다. "이 사람은 지(軹) 땅 심정리(深井里) 사람, 내 동생 섭정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경악하며 그녀를 말렸다. "이 자는 재상을 죽인 대역죄인인데, 어찌 스스로 화를 자초하시오?" 그러자 그녀는 하늘을 향해 외쳤다. "내 동생이 이토록 참혹하게 죽음을 택한 것은, 오직 저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알아준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동생의 위대한 이름을, 어찌 저 하나의 목숨이 아까워 영원히 묻히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외침이 끝나자 그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동생의 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섭영의 절규는 단순한 슬픔을 넘어, 사마천으로 하여금 붓을 들어 이 비극을 역사에 새기게 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2. 사마천의 붓, 명예를 갈망하다

사마천은 왜 이토록 처절한 이야기에 천착했는가? 그가 주목한 첫 번째 핵심은 '지기(知己)', 즉 '나를 알아주는 사람'의 무게다. 섭정은 천대받는 백정이었다. 그런 그의 내면에 숨겨진 가치를 당대의 유력자 엄중자는 신분을 뛰어넘어 알아보았다. 섭정의 목숨을 건 행위는 돈이나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온전히 인정해 준 단 한 사람을 위한 자기 존재의 증명이었다.
이는 궁형(宮刑)의 치욕으로 남성성과 명예를 거세당한 채, '죽음보다 못한 삶'을 견뎌야 했던 사마천 자신의 이야기와 공명한다. 죽음으로 명예를 지킬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오직 붓으로 자신의 이름을 다시 세우고자 했던 사마천에게 섭정 남매의 이야기는 단순한 기록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삶, 즉 명예를 위한 죽음이라는 길에 대한 통렬한 성찰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핵심은 '입명(立名)', 즉 '이름을 세우는 것'의 역설이다. 섭정은 신념을 위해 죽었지만, 누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지우려 했다. 이 모순 속에서 누나 섭영은 동생이 지키려 한 자신의 '생물학적 생명'보다, 동생이 목숨 바쳐 이룬 '사회적 명예'를 선택한다. 그녀의 외침이 없었다면, 섭정은 신원미상의 살인범으로 잊혔을 것이다. 한 인간의 행위가 진정한 '의(義)'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그 가치가 세상에 알려지고 기억되어야 함을 사마천은 누나의 죽음을 통해 역설한다. 섭정의 칼이 의리의 시작이었다면, 누나의 외침은 그 의리의 영원한 증표가 된 것이다.

3. 당신의 이름 뒤에 남을 서사

2천 년 전의 이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첫째, 우리는 여전히 '지기(知己)'를 갈망한다. 여기서 '지기'란, 나의 잠재력을 꿰뚫어 보고 사회적 편견과 무관심 속에서 존재 가치를 증명해 주는 사람이다. 잠재력을 믿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기는 상사, 서툰 도전을 묵묵히 응원하는 가족처럼, 나라는 존재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신뢰의 표현이다. 섭정의 이야기는 이러한 인정과 존중이 한 인간의 삶을 얼마나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역할이나 직위라는 틀 너머, 그 자체의 가능성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둘째, '나의 이름', 즉 정체성과 명예의 의미를 묻는다. 현대 사회에서 '이름'의 가치는 쉽게 생성되고 잊히는 디지털 정체성이나 직함, 재산 등으로 쉽게 대체되곤 한다. 하지만 섭영은 동생의 이름이 '자신을 알아준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로운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목숨과 맞바꾸었다. 이는 우리에게 스스로 묻게 한다. 당신의 삶이 끝났을 때, 당신의 이름 뒤에 어떤 서사를 남기고 싶은가? 그 질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이다.

물론, 섭정 남매의 선택은 극단적이며 사적 복수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가 지닌 힘은 바로 그 극단성에 있다. 신념을 위해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가.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로 여겼던 이들의 비장한 삶은, 모든 것이 가볍고 쉽게 소비되는 이 시대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묵직한 거울이 되어준다. 결국 한 인간의 이름이란, 육신이 소멸된 자리에 남는 가장 찬란하고도 무거운 유산임을, 2천 년 전의 이 핏빛 기록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