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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할아버지 / 조성용 '

답답하고 습한 여름이었다.
친할아버지가 몸이 좋지않다
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할아버지는 정정하신 편이었
다. 매일 아침 꾹 눌러쓴 모자와
가방 하나를 메고 어딘가로 나
서곤 하셨다. 집 안에 가만히
있어도 할 일이 생기고, 아무리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나에
게 할아버지는 참 신기한 존재
였다.

어렸을 때 잠시 할아버지 집에
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여름이 되면 수박
화채를 만들어 주셨고, 참외는
반을갈라 수저로 퍼먹는 법을
알려주셨다. 토마토를 잘게 잘
라 설탕을 뿌린, 지금 생각해보
면 별거아닌 간식이지만 그땐
참 맛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음
식을 포장해서 집에 들렀다.
성인이 되어 따로 살기 시작한
뒤부터는 자주 찾아뵙지 못해
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왔느냐
고 매번 반겨 주셨는데 이번에
는 방에 누워 겨우 말을 건네셨
다.

오랜만에 찾아뵈면 하는 말씀
이라고는 어렸을 때 내가 태권
도 했던 얘기, 내가 아팠던 얘기
등 전부 나에 관한 이야기다.
나조차도 잊어버린 나에 대한
기억이 할아버지에게는 생생
히 기억되고 있었다.

연로하셨음에도 풍부했던 머리
숱도 이제는 꽤 사라지셨고,
꾸준히 하던 새치염색도 그만 두
셨는지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했
다. 할아버지가 정말 건강이 안
좋아지셨구나, 속이 벌렁벌렁했
다. 울컥한 마음을 겨우 삼키고
손을 잡아드리고, 밥 잘 챙겨드
시라고, 저는 잘 지낸다고 고작
그런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랑 사는 게 좋았던
순진무구했던 시기, 할아버지
도 건강했던 시기, 할아버지
배를 만지면서, '할아버지 배
는 왜 이렇게 동그란 거예요?'
하며 깔깔 웃던 그때로 돌아가
고 싶다. 한 번 더 껴안아드리고
한번 더 웃어드리고 싶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너무 빠르
게 흘러간다. 익숙해질 때쯤이
면 이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은 빨리 늙어버리고 한날한시
에 모두가 이세상 소풍을 끝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떠나 보낼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게, 그 마음을 먹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레 먹어진다는 게 슬프
다. 사랑한다는 말로도 그 마음
이 선명히 전해지지 않은 날,
울고 싶지 않아도 마음이 먼저
내려앉아 버리는 그런날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 곁을
너무 빨리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