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연주자
답방탐험대
맨발의 연주자
맨발로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에블린 글래니. 올해 서른 여섯 살의 영국인인 그녀는 세계 최고의 타악기 연주자 중 한 명이다. 그녀가 여느 음악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 장애인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는 50여 개의 타악기를 한꺼번에 다룰 수 있으며 그 갖가지 타악기로 작은 빗방울 소리부터 천둥소리까지 만들어낸다.
열 두 살 때 친구의 북 치는 모습에 반해 타악기 연주를 시작한 그녀였지만 그때 이미 그녀의 청력은 완전히 상실된 상태였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에게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이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솔로 연주가의 길로 나선다.
그녀는 더 이상 제 기능을 못하는 귀 대신 발과 손끝, 뺨의 떨림으로 소리를 감지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무대엔 항상 맨발로 올라가 발끝에서 전해오는 진동으로 소리를 구별해냈다. 온몸 전체가, 그 중에서도 극도로 섬세해진 발끝의 촉각 하나 하나가 그녀만의 귀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20여 년의 노력 끝에 그녀는 미세한 대기의 변화로도 음의 높낮이를 읽어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고 마침내 세계 최고의 타악기 연주자가 된 것이다. 1년에 120여 회의 연주회를 열 정도로 바쁜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오케스트라와 협연 연주회도 가졌으며 청각장애 어린이들의 음악치료법을 지원해 주는 ‘런던 베토벤 기금단체’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이 어떻게 그런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대답한다.
“저는 청각장애인 음악인이 아니에요. 다만 청각에 조금 문제가 생긴 음악가일 뿐이죠.”